[로버트 라이쉬 칼럼] 코로나19와 부자들의 ‘부자를 위한 기부’

제프 베조스(아마존): 푸드뱅크에 1억 달러.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 빌&멜린다 재단):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개발에 수억 달러.

일론 머스크(테슬라): 인공호흡기 수천 개와 N95 마스크 수만 장.

월톤 가문(월마트 재단): 2500만 달러.

코로나19 사태에 어려운 곳을 돕겠다며 ‘통큰 기부’에 나선 부자들의 목록을 나열하면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미국인 수백, 수천만 명이 일자리를 잃어 의식주를 해결할 길이 막막해진 상황에서 고통을 분담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인 거죠.

지난주 포브스는 매년 발표하는 억만장자 순위를 발표하며, “지구상의 부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코로나19에 맞서 싸우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썼습니다. 기부에 나선 좋은 뜻과 취지 자체를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사실 갑부들의 ‘요란한 기부’는 누구보다도 부자들, 그러니까 자기자신을 위한 기부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사실 위에 언급한 기부금의 액수만 보더라도 이들이 가진 자산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 ‘푼돈’입니다. 베조스에게 1억 달러는 11일 일하면 벌 수 있는 돈이죠.

“노블리스 오블리제”, “솔선수범” 같은 단어로 포장되고 칭송받는 부자들의 기부가 특히 위험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런 기부가 주목받을수록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논의를 진행하는 동력은 떨어지고, 그 결과 이 부자들이 고용한 수많은 노동자, 나아가 일반 시민들의 삶은 오히려 더 위험해지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로 자택대기명령(stay-at home order)을 비롯해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됐습니다. 경제활동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죠. 그러나 반대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자를 온라인으로 사다 보니 아마존의 매출은 급상승했습니다. 물류센터를 비롯해 곳곳에 일손이 모자라 급히 신규 채용을 늘렸죠. 그런데도 아마존 직원들은 아직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기 전까지는 병가를 쓸 수 없습니다. 지난달 20일 상원의원 네 명이 베조스에게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조치가 미흡하다는 우려를 담은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월마트도 매출이 급증했고, 지난 3주간 10만 명을 추가로 고용했습니다. 하지만 월마트는 기업 차원에서 3월 16일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권고한 2주간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제대로 시행하는 데는 철저히 실패했습니다. 그 결과 월마트 직원들 가운데 코로나바이러스 사망자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월마트 직원 대부분은 장갑이나 마스크, 손세정제를 구하지 못한 채 위험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내가 일하는 매장이나 물류 창고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와도 병가를 내면 월급을 받을 수 없습니다. 유급 병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죠.

일론 머스크는 가급적 집밖으로 나오지 말고 거리두기를 통해 바이러스 확산을 막자는 보건 당국의 호소를 “멍청한 짓”이라고 일축했습니다. 그러면서 당국의 지침을 어기고 캘리포니아주 프레몬트에 있는 테슬라 공장을 계속 가동했죠. 직원들에게는 테슬라를 생산하는 일이 공중 보건보다 더 중요한 핵심 산업이므로, 계속 출근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렇게 자기가 소유하거나 운영하는 회사에서는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아예 대놓고 보건 당국의 지침을 무시하던 부자들이 개인 자격으로는 상당한 액수의 돈과 물자를 기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이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알아서 고통을 분담하고 돈을 내놓고 있으니, 행여 정부가 나서서 국가 재난 사태를 빌미로 부자들에게 무언가를 더 요구할 생각은 부디 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설을 통해 부자들의 생각을 직접 대변했습니다. “Let us now speak in favor of billionaires.(이 글에서는 억만장자의 목소리를 대변해보려 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은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만약 엘리자베스 워런이 공약한 것과 같은 부유세가 1980년대부터 있었다면, 1천억 달러 규모로 알려진 빌 게이츠의 자산은 지금의 1/10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고, 당연히 코로나19에 맞서 지금처럼 신속하고 대담하게 모두를 위해 필요한 일에 투자하지 못했을 것이다.

간단한 계산만 해봐도 저 주장이 얼마나 악의적인 물타기인지 알 수 있습니다. 워런이 주장했던 2% 부유세가 지금 도입된다면 게이츠가 추가로 내야 하는 세금은 60억 달러 정도입니다. 빌 게이츠의 총 자산이 1천억 달러 정도 되는데, 이 자산으로 매년 버는 자산 소득만 해도 60억 달러 정도 될 겁니다.

(옮긴이: 실제로 1980년대에 레이건 행정부는 부유세와 정반대인 대대적인 부자 감세 정책을 폈습니다. 세제가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기업은 물론 미국 사회와 정치, 경제에 30년 동안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가늠하기 어려운데, 그 얘기는 쏙 빼고 1980년대부터 부유세가 있었다고 가정해서 그 세율만 대입해 빌 게이츠의 자산이 1/10밖에 되지 않았을 거라고 계산한 겁니다.)

억만장자들이 내놓는 기부금이 적지 않은 액수라 해도, 여전히 정부가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쏟아붓는 공적 자금에 비하면 정말 얼마 되지 않는 돈입니다. 연준이 사실상 무제한의 양적 완화를 선언하고 채권을 사들이는 돈은 결국 고스란히 국가의 빚이 되는데, 이 빚을 갚으려면 세금을 더 걷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당연히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지 않고서는 국가 재정을 정상화하기 어렵고요. 코로나19로 인한 공중보건 위기를 어렵게 극복하고 나더라도 미국인들은 무척 긴 경제위기라는 터널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미국인들이 게이츠나 다른 부자들의 ‘통큰 기부’에 박수를 보내며, 이를 미국 사회의 가치와 위대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추켜세우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좀 섬뜩한 일입니다. 미국이 돈 많고 잘난 소수가 이끌어가는 과두제(oligarchy)가 아니라 진정 민주주의(democracy)를 이상으로 삼는 나라라면 오히려 이런 위기가 올 때마다 시민을 대변하는 정부 대신 부자들에게 의존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부자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있다면, 정부가 팬데믹을 계기로 세금을 더 많이 거둬 더 튼튼한 사회안전망을 확립하는 상황일 겁니다. 월스트리트저널 사설은 이렇게 썼죠.

코로나바이러스를 극복하고 나면 정부가 더 많은 분야에서 미국인의 경제활동을 장악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정치적 주장이 힘을 얻을 것이다. 이런 흐름은 그 자체로 미국 경제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위기는 늘 새로운 종류의 제도를 낳았습니다. 대공황 이후 1930년대 들어 국민의 삶의 수준은 정부가 책임지고 보장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보편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사회복지제도가 탄생했고, 최저임금이 보장됐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참전 군인들이 사회로 돌아오자 제대군인을 보호하고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법안(GI Bill)이 마련됐고, 이른바 스푸트니크 쇼크는 1958년 국가방위교육법(National Defense Education Act)을 낳았습니다. 고등 교육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하자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강화되고 중산층이 두터워졌죠.

도입될 때는 논란의 대상이자 인기도 별로 없던 제도도 시간이 흐르면서 정부가 시민에게 제공해야 하는 마땅하고 합리적인 서비스이자 제도라는 인식이 자리잡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바마케어로도 불리는 부담적정보험법(ACA)이 대표적인 사례일 겁니다. 공화당은 늘 오바마케어 철폐를 주문처럼 외워댔고, 트럼프 대통령도 부담적정보험법을 무용지물로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의료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국민의 숫자를 줄여준 이 법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갈수록 높아졌습니다.

팬데믹이 미국을 강타하면서 미국인들의 건강과 경제가 파탄날 지경에 이르자, 심지어 보수적인 정치인들마저 몇 달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을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습니다.

조시 홀리(미주리, 공화) 상원의원은 “코로나19 위기가 종식될 때까지 연방 정부가 모든 미국인의 급여를 80% 혹은 전체 미국인의 중위 소득까지 보전해주자”고 제안했습니다. “지금 미국 국민들을 갑자기 해고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월급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에서 해방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홀리 의원은 말했습니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말입니다. 홀리 의원의 논리를 조금 더 풀어보면, 정부가 유급 병가를 법제화해 보장하는 건 물론이고, 이럴 때 보편적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방안도 진지하게 고려해볼 만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미국의 사회안전망과 의료보험 제도는 대부분 미국인을 지켜내는 데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지구상의 소위 선진국 가운데 이렇게 자국민을 지키고 떠받쳐야 할 사회적 안전망을 허술하게 방치해둔 나라는 미국밖에 없습니다.

또한,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려면 당연히 세금을 더 걷고 정부가 더 많은 역할을 맡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정치적 논의 자체를 부자들이 앞장서서, 성공적으로 가로막는 나라도 미국밖에 없을 겁니다.

(가디언, Robert Re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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