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의 시대, 이대로 좋은가
이 칼럼을 쓴 랩탑 컴퓨터를 올려놓은 랩탑 받침대에 아마존이 승승장구하는 간단하고도 분명한 비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개당 19.99달러(우리돈 약 21,000원) 하는 이 랩탑 받침대는 가격과 기능, 편리함까지 고객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담고 있습니다. 아마존이 자체 랩탑 받침대를 만들기로 한 결정은 랩탑 받침대를 제조해 팔아온 레인 디자인이라는 회사에는 날벼락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한 레인 디자인은 창업 후 지난 10년간 꽤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지만, 아마존과의 경쟁에서는 힘 한 번 쓰지 못했습니다.
아마존이 가져온 혁신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레인 디자인의 빗방울 모양 로고를 아마존의 웃고 있는 화살표 모양 로고로 바꾼 뒤, 가격을 절반으로 깎아버렸죠.
“아마존은 시장에서 제일 잘 나가는 제품을 골라서 베끼면 그만이었습니다.”
아마존에서 물건을 파는 업체들을 대상으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직 아마존 제품 매니저 출신 레이첼 그리어의 말입니다.
압도적인 시장지배력을 유지하려는 아마존의 계속된 공격적인 행보에 피해를 본 기업은 레인 디자인뿐이 아닙니다. 소매 분야는 아마존이 성공을 거둔 뿌리와도 같은 것으로 여기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밖에도 시가총액 800조 원에 이르는, 어느덧 거대한 권력이 된 아마존은 전혀 연관이 없던 수많은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온라인 광고 시장을 장악한 공룡이 되어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하지만, 식료 및 잡화 유통, TV, 로봇, 클라우드 서비스, 그리고 가전에 이르기까지 아마존은 이미 많은 분야에서 손대는 분야마다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다음에 아마존이 진출을 선언하는 분야가 어디일지, 이미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는 다음번 목표는 어디일지 밤잠을 못 이루며 불안해 할 CEO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아마존은 음식 배달 서비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는 이미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수공예품 온라인 장터인 엣지(Etsy)와 비슷한 아마존 핸드메이드(Amazon Handmade)도 선보였습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가리지 않고 아마존은 다 잘 만듭니다. 영화, TV 드라마, 비디오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일감을 찾는 사람과 일손이 필요한 업체를 이어주는 서비스도 있습니다. 컴퓨터로 할 만한 데이터 작업과 실제로 힘을 쓰는 육체노동용 플랫폼이 따로 있습니다. 출판, 도서 판매는 이미 오래전부터 아마존이 선도해 온 분야로, 책 읽는 사람들이 애용하는 소셜네트워크 굿리즈(GoodRead.com)도 아마존이 인수했습니다. 사람들은 기저귀, 이유식, 과자, 의류, 가구, 배터리까지 모두 아마존에서 삽니다. 광고도 팔고, 결제를 처리하고 관리하며, 소액 대부업까지 합니다. 게임 중계 사이트 트윗치(Twitch), 영화 자료를 모두 모아놓은 IMDb에 이르기까지 아마존이 보유하고 있는 웹사이트 목록을 보시면 아마 다들 깜짝 놀랄 겁니다.
총생산량에 따라 집계한 미국 10대 산업은 정보산업, 비내구재 제조업, 소매 유통, 도매 유통, 내구제 제조업, 의료, 금융 및 보험, 정부 및 공공부문, 전문직 서비스업, 부동산입니다. 이 가운데 부동산을 제외한 9개 분야에서 아마존은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부동산이라고 아마존이 기존 업체들보다 훨씬 나은 플랫폼을 제공하지 말라는 법이 없죠. 언젠가 뛰어들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기존 부동산 업계는 계속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존은 그야말로 거대한 백상아리 같아요. 한 번 잘못 건드렸다간 그냥 끝이죠.”
“과거 대표적인 기간산업이었던 철도의 21세기 버전을 보유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에요. 철도가 없어 원자재를 받지 못하고 완제품을 나를 수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때처럼 아마존을 통하지 않고는 고객을 만날 수 없는 기업들이 많은데, 바로 그 기업들과 아마존이 직접 자회사를 만들어 경쟁하고 있는 모습이죠.”
아마존의 가장 치명적인 비교우위이자 무기는 바로 그동안 쌓아온 수많은 고객 정보다. 이를 활용하면 아마존이 진출하지 못할 분야가 없을 정도다. 레이첼 그리어는 말했다.
“아마존이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고 전지전능한 데이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사람들이 무엇을 찾고, 어떤 버튼을 클릭했으며, 어떤 데는 관심을 두지 않았는지 모두 다 알 수 있으니까요. 매번 무언가를 검색했는데, 검색결과로 나온 것 가운데 어떤 것을 결국 클릭하지 않았다면 아마존은 무언가 고객의 선택을 받기에 부족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이를 기록해둡니다.”
아마존은 당신이 누구와 어디에 사는지 알고, (스마트폰으로 아마존 앱을 쓴다면) 당신이 지금 이 순간 어디에 있는지도 압니다. 어떤 TV 프로그램을 보는지, 어떤 음악을 듣는지, 그리고 어떤 웹사이트를 즐겨 찾는지도 다 알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마존은 소비자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열심입니다. 사소한 것까지 소비자의 면면을 더 알아갈수록, 그만큼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충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렇게 구축한 방대한 데이터는 경쟁업체와 잠재적인 경쟁업체에는 무시무시한 무기지만, 소비자들에게는 어쨌든 일단 기분 좋은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토대입니다. ‘아마존에 가면 믿을 수 있는 물건을 편리하게, 그리고 싸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은 사실상 정설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마존의 데이터는 실로 방대하고 섬세해 10대 고객이 임신했을 때 부모보다 먼저 이를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아마존은 데이터를 무척 신중히 활용했습니다.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빅브라더 행세를 하는 것처럼 비치지 않게 신경을 썼죠.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싱크탱크 뉴아메리카의 법률 자문 연구원 리나 칸은 소비자들이 아마존에 만족하는 부분만 보는 것이야말로 왜곡이고 편향이라고 지적한다. 아마존이 경쟁업체는 물론 제휴업체, 노동자들에게 끼친 막대한 피해를 덮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건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접근이죠. 아마존 때문에 당장 수많은 일자리가 반 토막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조업 노동자, 물류, 유통 과정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다른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싼 가격에 세제를 주문하면 총알 배송으로 바로 오고, 미뤄둔 TV 드라마도 몰아볼 수 있게 준비해주고, 아마존은 정말 편리한 생활을 가능하게 해준 고마운 존재입니다. 하지만 물류 센터를 짓는 곳마다 지역 일자리를 없앤 만큼 만들어내지 못해 실업률을 높이고,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로봇 취급하고, 출혈경쟁을 마다하지 않으며 경쟁업체를 거칠게 몰아세우며, 유통업체와 생산업체의 납품 단가를 후려치는 등 아마존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요인 중에는 잘못된 것들, 바로잡아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지역사회 시민운동가인 스테이시 미첼은 결국 소비자도 아마존의 거대한 알고리듬 안에서 철저히 조종당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마존의 알고리듬은 궁극적으로는 당연히 소비자가 아니라 아마존을 위해 설계된 겁니다. 어떤 책을 추천하고 소비자에게 자꾸 노출하는 데도 다 그럴 만한 이유와 사정이 있죠. 예를 들어 아마존이 어떤 작가의 작품을 띄우기로 마음만 먹으면 아주 쉽게, 얼마든지 이를 해낼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보이는 대로 반응할 뿐, 지금 아마존이 무엇을 잘 안 보이게 감추어놓았는지, 무엇을 강조한 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아마존은 스스로 투자한 회사와 경쟁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스타트업 누클러스(Nucleus)와 알렉사가 지원하는 화상채팅 전용 태블릿 제품에 무려 560만 달러를 투자했던 아마존은 이내 전략을 바꿔 무늬만 좀 다를 뿐 거의 비슷한 제품인 에코 쇼(Echo Show)를 출시했습니다.
누클러스의 공동창업자 조나단 프란켈은 지난해 고충을 털어놓았습니다.
“아마존이 우리 기술을 훔쳐 우리 제품을 복제했으리라는 의심을 거둘 수 없습니다. 아마도 수백, 수천만 가정에 들여놓을 수 있는 기기를 아마존 제품으로 팔고 싶었겠죠. 그럴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서자 이미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보라며 투자까지 했던 우리도 가볍게 걷어차 버릴 수 있었던 겁니다. 이 일을 계기로 아마존은 믿을 수 없는 사업 파트너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 또한 계산에 넣었겠죠. 어차피 아마존 없이는 생태계가 돌아가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으니까요.”
누클러스에 투자한 뒤 토사구팽한 문제나 칼럼 첫머리에 언급한 랩탑 받침대에 관해 공식적인 견해를 물었지만, 아마존은 답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다만 레인 디자인의 제품은 여전히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 품목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만 언급했습니다.
아마존의 거침없는 행보에 투자자들도 파도를 탔습니다. 아마존이 홀푸즈를 인수했을 때 경쟁 식료품 마트 회사들의 주가는 바로 곤두박질쳤습니다. 두 달 뒤 아마존이 홀푸즈에서 파는 물건들의 가격을 낮추겠다고 발표한 뒤에는 이들 주가가 더 떨어졌습니다. 아마존이 요리 재료를 모아 파는 반조리식품에 트레이드마크를 신청할 계획이라는 뉴스에 반조리식품 분야에서 순항하던 블루 애프론 주가는 11%나 폭락했습니다. 정확히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은 전혀 없었지만, 아마존이 JP모건, 버크셔 해서웨이와 함께 일종의 비영리 의료사업을 시작하는 데 관한 협의를 시작했다는 정도의 뉴스만 나왔는데도 의료 관련 회사들의 주가가 순신간에 내림세로 돌아섰습니다.
비스포크 투자 그룹이라는 회사는 2012년부터 54개 소매업체의 주가지수를 모아 추적,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 지수에는 “아마존이라는 태풍 앞에 놓인 촛불 지수(Death by Amazon index)”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아마존과의 경쟁이 가장 힘겨운 분야가 바로 소매업이기 때문입니다. 비스포크 투자 그룹의 거시경제 전략 분석을 맡고 있는 조지 퍼크스는 “통속극 제목 같은 이름을 붙였다는 걸 잘 안다”면서도 “소매업계의 상황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하기 어려웠다”고 말했습니다.
2012년 2월부터 2018년 1월까지 아마존 주식은 560% 올랐습니다. S&P 종합주가지수는 102% 올랐죠. “태풍 앞에 놓인 촛불 지수”의 성장률은 42.8%에 그쳤습니다.
아마존은 아직도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기업입니다. 전자상거래 전반을 장악하고 있다지만, 미국 전체 소매업계에서 전자상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9%에 불과합니다. 홀푸즈를 인수한 데 이어 계산대를 없애고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도 거의 없앤 오프라인 매장 아마존 고(Amazon Go)를 출범함으로써 아마존은 나머지 91%를 정복하려는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한편 계산대를 없애고 쇼핑을 자동화한 오프라인 매장에 쓰인 기술과 관리 노하우를 아마존이 다른 소매업체에 사용료를 받고 팔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아마존은 사용료도 받고 경쟁업체의 매출 데이터도 고스란히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죠. 아마존 웹사이트를 통해 구축한 데이터 왕국을 오프라인으로 확장하는 셈으로, 이 데이터를 종합하면 아마존이 다음번에 소매업 가운데서도 어느 분야에 진출하는 게 가장 성공할 확률이 높을지 더 정확히 분석할 수 있게 됩니다.
의료, 제약업계도 아마존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분야입니다. 먼저 버크셔 해서웨이, JP모건과 함께 합자회사를 차려 의료 산업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파악한 뒤 아마존이 온 힘을 다해 뛰어들면 진입장벽이 높기로 유명한 이 분야도 더 이상 난공불락이 아닐 겁니다.
금융 서비스 분야에서는 이미 영역을 확장하는 데 필요한 발판을 마련해 뒀습니다. 아마존은 이미 자체 결제 수단을 갖춰놓고, 제삼자 판매 대리인에게 소액 대출도 해주고 있습니다.
“아마존이 은행의 기업금융 부문을 인수한다고 해도 전혀 놀랍지 않습니다.”
스테이시 미첼의 말입니다.
그렇다면 제프 베조스의 최종 목적은 무엇일까요? 리나 칸은 “경제의 모든 분야에 뛰어드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아마존이 손대지 않을 법한 분야를 찾아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느 시점에는 반독점 규제가 분명 아마존의 발목을 잡을 거라고 칸은 말했습니다. 하지만 현행법은 아마존 같은 대기업의 등장을 예견하지 못했기에 이를 적절히 규제할 수 없습니다.
“당장 플랫폼 사업자가 자기 플랫폼에서 사업하는 업체와 직접 경쟁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만 있어도 아마존의 독점적 폐해 가운데 상당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면 아마존이 아마존 웹사이트를 계속 운영하려면 웹사이트에 자체 상표 제품을 팔 수 없게 규제하는 겁니다. 칸은 그런 규제가 없다면 아마존이 계속해서 다른 사업자들이 창출한 부와 가치를 가로채 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가디언, Olivia Solon / Julia Carrie W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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