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한국사전 – 대륙 속의 고구려 왕국, 제왕 이정기

- 고구려 유민 이정기, 당 절도사에 추대되다
668년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에 끌려온 약 20만 명의 고구려 유민들은 비참한 노예로 전락했다. 노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는 당나라의 군사가 되는 것이었다.
고구려 유민이었던 이정기는 당군이 되어 뛰어난 전적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안녹산의 난을 진압하고 위구르 군대를 두려움에 떨게 한 이정기는 그를 시기한 당 절도사 후희일에 의해 옥에 갇히게 된다. 그런데, 이정기를 존경한 평로군 병사들이 그를 구출하고 ‘치청번진’의 절도사로 추대한다.

- 당대 가장 강력한 절도사, 이정기
8세기 중반, 중국대륙은 연이은 반란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그러나 이정기가 다스린 지역은 달랐다. 이정기의 강력한 통치력과 군사력은 당나라 내 절도사들을 두려움에 빠뜨렸다.
심지어 이정기를 황제라고 부르며 사신을 보낼 정도로 두려워했다.
당나라는 이정기에게 여러 관직을 내리며 충돌을 피하고자 노력하지만, 이미 발해와 신라와의 교역권을 완전히 장악한 이정기는 부의 축적과 강력한 군대로 당나라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 이정기, 그만의 왕국을 만들다
당시 이정기가 차지한 산둥반도 일대 15개 주는 통일신라보다 넓고 인구수도 더 많았다. 이정기는 치정지역 중심지인 청주에 높이 20m, 길이 13km에 달하는 성을 세워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사실상 독립왕국의 탄생이다. 경제적인 풍요로움과 안정적인 통치로 태평성대를 이룬 이정기는 당나라의 황실을 넘볼 정도로 거대한 세력을 형성한다. 드디어 10만 군대를 이끌고 당의 수도로 향하는데 …

이정기의 죽음과 당(唐)의 잔인한 보복
그러나 당과 일대결전을 앞둔 이정기는 뜻밖의 죽음을 맞게 된다.
이정기의 뒤를 이은 아들 이납은 한 달 가까이 아버지의 죽음을 속인다. 이납은 왕국을 제(齊) 라 칭하고 대외적으로 독립왕국임을 선포한다. 그러나 55년 후인 819년, 결국 제(齊)는 당나라의 집요한 공격으로 패망한다. 제나라가 패한 후, 당은 고구려 유민이 대다수인 운주병사 1,200명을 학살한다.



한국사전 3회 – 대륙 속의 고구려 왕국, 제왕 이정기 (2007.6.30.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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