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신간도서]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이은정 소설집 (마음서재)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이은정 소설집 (마음서재)
책 소개
부서지기 쉬운 삶에서
끝끝내 찾아낸 사랑과 희망의 빛
글을 쓰기 시작한 지 20년 만에 소설가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이은정 작가가 첫 소설집을 펴냈다. 2018년 단편소설 「개들이 짖는 동안」으로 동서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그가 산문집 『눈물이 마르는 시간』, 7인 연작 에세이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공저)에 이어 소설가로서 처음 펴내는 작품집이다. 신작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은 작가의 단단한 내공이 응축된 책으로 모두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삶이 완벽한 어둠으로 다가올지라도 절망 뒤에는 희망이 웅크리고 있음을 온기 어린 시선으로 포착해낸다.
이 소설집에서 작가는 존재의 이면을 끈기 있게 응시하며 평범한 사람들이 주고받은 평범하지 않은 상처에 대해 그린다. 상처를 주거나 상처받는 이들은 가족, 부부, 친구, 이웃의 이름으로 서로 얽힌다. 작가는 이들 관계의 단면을 부각함으로써 “희망과 사랑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비극적 감성으로 표출”한다. 더불어 구모룡 평론가가 해설에서 말한바, “수직적 초월이 불가능한 세계, 모두가 상처받고 고통을 감내하는 현실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한 가닥 빛과 물줄기를 찾아낸다.” 서늘한 충격을 안겨주는 표제작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을 비롯하여 이 한 권의 책에 실린 소설들로 우리는 이 작가를 한국문학의 뜨거운 신예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출판사 리뷰
“이은정의 인물들은 부서지기 쉬운 삶에서
생의 이면을 들여다보려는 의지를 잃지 않는다.
사랑과 희망의 미미한 빛을 포기하지 않는다.”
- 구모룡(문학평론가)
누군가의 고단한 삶, 상처받은 마음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는 사람. 이은정 작가는 그런 사람이다. 밥 대신 글을 택한 그가 ‘무명작가’로 20년을 살아오면서 견딘 가난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런 이에게는 타인의 고단함이 더 잘 보이는 것일까. 절망이 깊이 드리운 이들의 삶을 작가는 온기 어린 시선으로 끈기 있게 응시해왔다. 삶을 치열하게 붙들고 있는 그의 소설이 더 깊고 넓은 공감의 지점을 만들어내는 이유다.
문단을 떠들썩하게 할 만한 데뷔는 아니었어도 이은정 작가는 쉬지 않고 성장했으며, 천천히 작가가 되었다. 그가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문장들은 어느덧 여덟 편의 소설로 모였고,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이란 표제를 달고 세상에 나왔다. 부서지기 쉬운 삶을 아슬아슬 살아내는 사람들의 내밀한 삶을 비추며 희미한 별 하나 찾아지지 않는 ‘연탄 같은 하늘’을 이고서 다만 오늘을 살아갈 뿐인 모두에게 진한 위로를 보낸다.
“슬픔을 머금은 사람의 등 뒤에서 언제나 빛나고 있었을
저 별들은 정작 보아야 할 대상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표제작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은 비틀린 사랑으로 시작된 관계가 맹목과 집착으로 나아가 한 가족을 폭력의 극단으로 몰아가는 이야기다. 미진과 미주 자매는 아버지의 폭력에서 기인한 부모의 불화를 지켜보며 자랐다. 불안과 슬픔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자매의 영혼은 위태롭기 짝이 없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폭력이 난무하는 가정, 그 모습을 그려내는 작가의 묘사가 현장을 목도하는 듯 생생하다.
“묵직한 어떤 물체가 왼쪽 벽에 부딪히면 곧이어 사기 재질의 어떤 것이 오른쪽 벽에 부딪혀 쩍 하고 소리를 냈다. 씨발년이 왼쪽 벽에 부딪히면 개새끼가 오른쪽 벽에 부딪혔다. 옷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뺨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죽어라’와 ‘죽여라’가 안방에서 합창하며 클라이맥스를 찍었다.” _p.52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에서
엄마의 상처는 고스란히 딸들에게 전염되고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같이 살면 안 되는 사람들”도 있다면 그들이 완벽하게 헤어질 수 있는 방법이란 과연 무얼까. 우발적인 듯하지만 필연에 가까운 폭력으로 이들은 마침내 가장 완벽한 이별을 맞이한다. 담담한 서사에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담아 독자를 서늘한 충격에 빠뜨리는 문제작이다.
「잘못한 사람들」 역시 사소하고 우연인 듯한 사건이 점점 복잡하게 얽히면서 파국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다. 새벽녘 친구 세호의 전화를 받고 술자리에 불려 나온 ‘나’는 이 시대의 전형적인 소시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직장에서 잘린 친구의 신세 한탄이려니 했던 술자리는 점점 이상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자신이 어쩌면 폐지 줍는 할머니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세호의 고백 때문이다. 친구 세호에 내재한 분노가 폐지 줍는 할머니에 대한 폭력으로 표출된 것이다.
“나는 잘못 하나도 안 했는데 어릴 때는 처맞고 커서는 회사도 잘리고 그러는데, 왜 잘못인 줄 알면서도 잘못하고 사는 거야? 어? 잘못인 줄 알면 안 그래야지! 어?” _p.20 「잘못한 사람들」에서
도시의 남루한 골목에서 발생한 우발적 폭력은 ‘나’의 안온한 삶을 일거에 흔들어놓는다. 개인의 분노에서 비롯된 듯한 이 폭력은 “사회의 병적 징후를 내포하며, 연관이 없는 인물이 희생양이 되는 구조적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이 밖에 ‘도시 탈출’을 모티브로 한 「숨어 살기 좋은 집」, ‘귀향’을 모티브로 한 「그믐밤 세 남자」 「개들이 짖는 동안」 등도 작가의 서정적 문장과 특유의 섬세함이 반짝이는 소설이다. “모두가 상처받고 고통을 감내하는 현실을 회피하지 않는” 이은정 작가로 인해 우리는 비로소 생을 비추는 “한 가닥 빛을 찾아낸다.” 이 한 권의 책에 실린 소설들로 우리는 이 작가를 한국문학의 뜨거운 신예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 소설들을 쓰면서 끊임없이 떠올린 단어는 ‘가해자’와 ‘피해자’였다. 이분법으로 말해도 되는 것인지 깊게 고민해야 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주거나 받아야 했던 평범하지 않은 상처들은 생각보다 너무 많았고 나도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매번 내가 피해자이기만 했는지 생각하는 내내 몸이 아팠다. 내가 찾은 어설픈 답을 여덟 편의 소설로 남긴다. 평화롭고 무해한 세상에서 나와 당신, 그리고 아이들의 영혼이 안전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소설이 아니라서 미안하다.
―‘작가의 말’에서
해설
사랑스러운 가족, 평화로운 마을, 아름다운 도시는 거의 환상에 속한다. 흩어지거나 해체되는 가족, 줄어들거나 소멸하는 마을, 불평등과 갈등의 도시가 현대의 구체적 진면에 가깝다. 이은정의 소설이 포착하는 지점은 미시적인 관계의 이면에 도사린 삶의 부조리함이다. 신체적 개인은 가족과 사회가 형성하는 중첩된 관계의 역장力場 안에 있다. 작가는 관계의 단면을 부각하면서 소설가의 특권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특정의 관계가 두드러진 서술로 나타나거나 극단의 상상이 도출되기도 한다. (…) 이은정 소설의 주조는 암울하다. 희망과 사랑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비극적 감성으로 표출한 까닭이다. 훼손되고 타락한 세계를 초월할 푸른 하늘과 별빛을 찾기 어렵다. 수직적 초월이 불가능한 세계, 모두가 상처받고 고통을 감내하는 현실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한 가닥 빛과 물줄기를 찾아낸다. 생성과 재생, 갱생과 부활의 징표가 없지 않다. 작가의 고단한 의지가 빛난다.
―구모룡(문학평론가)
차례
잘못한 사람들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그믐밤 세 남자
피자를 시키지 않았더라면
친절한 솔
숨어 살기 좋은 집
엄 대리
개들이 짖는 동안
작품 해설│구모룡(문학평론가)
부서지기 쉬운 삶과 존재의 이면
작가의 말
저자 소개
이은정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다. 단편소설 〈개들이 짖는 동안〉으로 2018년 동서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20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일간지에 짧은 에세이를, 계간지 《시마》에 ‘이은정의 오후의 문장’ 코너를 연재 중이다. 저서로 산문집 《눈물이 마르는 시간》과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공저)가 있다.
책 속으로
나는 잘못한 걸까, 안 한 걸까. 세호가 할머니를 때린 이유가 떠올랐다. 잘못인 줄 알면서 잘못하고 사는 게 화가 났다던. 어느 쪽일까. 고개를 어느 쪽으로 흔들어야 나는 살 수 있을까.
- p.38, 「잘못한 사람들」에서
그들은 그날의 자신 그리고 서로가 본 장면들을 누구도 발설하지 않았다. 종수는 혜자의 목을 졸랐고 혜자는 딸들을 버리려 했고 미주는 선 채로 오줌을 쌌고 미진이 망치를 들고 서 있었던 사실에 대해. 모두가 상처받았지만 누구도 당당하지 못했던 그날에 대해 약속한 듯 모두가 침묵했다.
- p.58-59,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에서
“그믐달이 초승달보다 날카롭다는 걸 아시나요? (…) 곧 소멸할 것들은 저리 발광을 하든가 완전히 침묵하죠. 어느 쪽이든 간에 존재의 마지막은 뭔가 달라요.”
- p.92, 「그믐밤 세 남자」에서
여자는 와인잔에 담긴 소주를 단번에 모두 들이켰다. 휴지로 손가락과 입가를 닦아내고 입안에 남은 음식물을 혀끝으로 걷어내던 여자는 몹시 신중해 보였다.
“헤어지자……고?”
여자가 중얼거렸다. 여자의 손아귀에서 휴지가 구겨지고 나서야 여자는 결심한 듯 말했다.
“서른 대만 맞아. 그럼 헤어져줄게.”
- p.103, 「피자를 시키지 않았더라면」에서
어릴 때는 어른들이 무서워서 솔직하지 못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솔직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솔직하지 않았다. 얼마든지 솔직한 척할 수도 있는 게 어른이었고, 때론 진실보다 진실처럼 포장된 거짓이 신뢰받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혼란스러웠다.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이 믿는 쪽을 택하고 살았다.
- p.145-146, 「친절한 솔」에서
예민하게 바라보던 여자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더럽고 천박하다는 양 바라보던 시선과 다 알고 있으니 까불지 말라는 듯 얄팍한 미소. 도리질할 때 헝클어지던 여자의 머리카락마저 내 안에 어떤 수치심을 불러일으켰다. 여자가 그럴수록 나는 더 숨고 싶었다. 여자의 아들과 함께. 당신에게서 영원히.
- p.179, 「숨어 살기 좋은 집」에서
어떤 생각을 하든 시간은 가고 어떻게 살든 세월은 가지. 아내. 아니, 전처. 아내. 전처. 나, 등신. 가버린 것들에 관한 이야기와 오지 않은 것들에 관한 이야기 중 어떤 쪽에 승산이 있을까.
- p.210, 「엄 대리」에서
사람이 사람인 상태로 가장 뜨거울 수 있는 온도는 몇 도일까. 체온계 눈금은 42도까지다. 사람은 죽었다 깨나도 100도에 도달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어차피 인생은 미지근한 거다.
- p.241, 「개들이 짖는 동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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